2022. 3. 30. 04:00ㆍ2022년 다해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한 사람의 율법학자였을 뿐입니다.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사람일 뿐
그분이 하느님이거나 하느님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위험한 발언을 합니다.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가진 특징 때문입니다.
믿음은 체험에서 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경험한 이들은
자신을 부르신 하느님에 대해 알아가게 됩니다.
체험이 쌓일수록 하느님께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자신이 느끼고 체험한 하느님을 문자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 문자가 바로 성경이며 율법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을 때에
또 율법을 지키며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과 함께 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 체험을 기록한 성경은
하느님과 함께 읽을 때 비로소 뜻이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문자가 되고
그 안에 서로 부딪치는 내용들과
과장된 표현으로 인해 잘못 해석하게 될 뿐입니다.
유다인들의 잘못이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문자로 전해진 성경에 매달릴 뿐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섭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을 외면하며
그저 자신들의 생각을 문자에 담았고
문자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분임을 고백하기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토대로 그분의 말씀을 바라봅니다.
우리 역시 유다인처럼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나 기도 중에 성경을 대하고
그 안에 담긴 아버지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세상 안에서 하느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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