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2023. 6. 25. 04:002023년 가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원수를 보지 않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직접 마주칠 수 있는 접점을 하나하나 없애서

내 마음을 돌보는 방법입니다.

다만 돈이 많이 든다는 점과

상대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원수를 안아주는 것입니다.

감싸 안을 때 원수의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이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을 받아들이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입니다.

처음 마주칠 때는 힘들지만

이내 상대를 의식하지 않게 됩니다.

 

당장은 편하지만 상대를 계속 의식해야 하는 방법과

당장은 불편하지만 상대를 잊을 수 있는 방법

과연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까요?

둘 방법 다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결국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상대를 품에 안으며

상대가 괴물이 아닌 사람임을 느끼고

그 사람 뒤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하느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더 깊은 충만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러한 자세를 말해줍니다.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와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 다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조금 더 나아간 말을 합니다.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도록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내버려야 합니다.

상대에 대한 감정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한 용서는 하느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기에

우리는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역시 그렇습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아닌 하느님을 바라보라는 뜻이며

내가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한 선택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서로의 감정이 반목하여 세워진 벽은

하느님이 오심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벽을 허물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기억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넘어

하느님을 먼저 바라볼 수 있는

한 주간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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