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8. 04:00ㆍ2022년 다해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평신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교회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교회
한국 천주교회를 표현하는 지칭입니다.
성직자 없이 평신도들이 스스로 하느님을 찾았기에
평신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유일한 교회입니다.
학문으로 다가가 삶의 가치로 변화되어
양반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사람다운 삶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겼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다른 나라에 복음이 선포된 모습과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선교사와 함께 군대와 문화가 함께 들어와
민족의 토대를 위협했던 것과는 달리
스스로 신앙이 민족 안에 자리 잡도록 이끌었습니다.
상재 상서와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도
신분제로 인한 문제를 벗어나려는 노력도
또한 참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도
모두 우리 나라가 가진 독특한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여 피해를 보았고
때로는 기존 문화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이가 고초를 당했고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은
신앙의 후손인 우리가 살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배교를 할 수도 있습니다.
책임을 져야 할 것이 많다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배교를 하더라도 다시 회개하여 돌아온다면
그들은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더라도 신앙의 전달을 위해
더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알고 따르도록 이끌기 위한 선택은
순교와 버금가는 신앙 여정을 걸어갑니다.
죽음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참된 행복과 삶의 의미를 발견했을 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느님 영광을 위한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신앙 선조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요소를 알려줍니다.
첫째로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만나
참 행복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적인 나약함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둘째로 신앙 여정의 다양한 길입니다.
각자의 선택은 나약함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하느님이 섭리하심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남을 미워하고 비교하고 시기 질투하기보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복음의 향기를 내도록 전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은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자신이 느끼고 체험한 만큼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여정은
우리가 무엇을 경험했고 어떻게 성찰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믿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결과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사실이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신앙의 후손이 입니다.
선조들의 신앙에 기대어 머무는 이들이 아니라
선조들이 보여준 신앙 여정을 통해
우리가 걸어갈 여정을 찾고 나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셨듯
우리 역시 후손을 위한 길을 내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결정 하나하나가
또 우리가 남긴 행동 하나하나가 결실을 맺고
그 결실을 통해 또 다른 이들이 여정을 나아갈 수 있음을 믿으며
오늘 희망을 찾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그런 한 주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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