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월요일

2023. 2. 13. 04:002023년 가해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예수님은 많은 이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에게는

어떠한 표징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병자와 바리사이는 마음속 의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병자들과 마귀들린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자유로움을 얻어 인간다운 삶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그런 절실함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주시어 변화를 이루십니다.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성자 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달랐습니다

그들도 표징을 요구했지만 이는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음이 아닌 자격을 따지는 것이고

하느님이 아닌 세상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마음에 예수님은 어떤 표징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셨지만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아무리 좋고 타당한 행동이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도에 따라

하느님께서는 다른 반응을 주십니다.

카인은 땅의 소출을 바쳤지만

아벨은 맏배들과 굳기름을 바쳤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행동은 같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만을 굽어보셨습니다.

 

역시 카인은 하느님께 대한 불만을 가지고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됩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이 아니라

세상의 시선, 곧 동생을 끌어내려 자신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그가 저주를 받아 쫓겨난 것은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유혹은 우리 마음에서부터 찾아옵니다.

좋은 마음 타당한 행동 합리적인 선택이라도

그 안에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유혹이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며

오늘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하느님을 향한 절실함을 간직하는

그런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