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4. 09:42ㆍ천주교 신앙 생활 가이드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갈등과 싸움이다.
아무리 미리 일정을 조율하고 여행이 목적을 분명히 해도 문제는 생긴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발목을 삐끗해서 걷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지갑을 숙소에 두고 나올 수도 있다. 소매치기나 도둑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을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기대가 가득한 여행이 서로 남 탓을 하며 책임을 묻다가 최악의 순간으로 변한다.
오래 사귄 친구라도 여행을 가면 다툴 수 있다. 매일 만난 사이라도 하루 종일 함께 하다보면 서로 모르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로에게 새로운 여행지라면 감정은 더 커진다. 응급 상황에서 말도 안 통하는 이방인의 입장이 되면 더 불안해진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데 의지할 곳이 없어 서로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지며 높아진 기대는 그만큼 실망으로 이어진다.
동행자와 다투고 나면 남은 여행 기간은 고통의 시간이 된다.
먼저 말을 걸면 지는 것같고, 그렇다고 숙소와 비행기표를 다시 끊을 수도 없다. 어찌 되었건 여행 일정은 함께 가야 한다. 따로 움직인다고 해도 숙소에서의 만남까지 피할 수는 없다. 상대에게 숙소를 나가라고 할 수도, 내가 나갈 수도 없다. 금전적인 어려움과 언어의 한계, 낯선 곳에서 홀로 있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피할 수 없는 갈등.
어떤 자세로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며 갈등과 싸움, 상처는 피할 수 없다.
어떻게 대하며 앞으로 나아갈지가 중요하다. 태도와 자세의 문제이다.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는 감정과 사실의 구분이다.
현실은 부정하거나 피하려고 할때 문제는 더욱 커진다.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서로에 대한 배려라는 이름으로 숨기거나 덮으려고 하면 어느새 마음 안에서 회오리가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온다. 갑자기 생긴 돌발 상황에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사람의 마음속에서 점점 덩치를 키워나간다.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까지 했는데 넌 왜 그러느냐? 는 말에 상대는 의아할 뿐이다. 자신이 모르던 일을 감정을 더해 지적당하면 황당함과 더불어 감정적으로 응하게 된다. 각자가 가진 작은 생각과 감정을 모두 말하는 것도 서로를 지치게 하지만 여행에 문제를 줄 정도의 사안을 혼자 감당하려고 말하지 않거나 덮으면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된다.
둘째는 중요한 가치를 지키려는 자세이다.
여행의 목적은 어떤 여행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친구와의 우정을 다지기 위한 여행이라면 우정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된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익히기 위함이라면 배움이 중요해진다. 그때그때의 사건과 감정에만 집중하다보면 이 목적을 어느새 잊어버린다. 우정이 중요한 목적이었다면 갈등 상황에서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더라고 서로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배움과 경험이 목적이었다면 감정과 갈등은 뒤로 하고 기본 일정을 먼저 소화해야 한다. 만약 목적과 상관없이 일정을 다 취소하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또 다른 갈등과 싸움의 씨앗으로 남아 더 큰 감정의 골이 생기게 된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은 짐을 짊어질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준비가 잘 된 여행에서 갈등과 싸움의 원인은 갑작스런 사고에 대한 대처의 문제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생각대로 일정이 풀리지 않았을 때, 불안한 마음에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다. 그 감정을 받아주지 못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갈등은 싸움이 되고 싸움은 상처로 남게 된다.
서로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갈등은 쉽게 풀릴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약한지 알 수 있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서로의 우정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올까? 서로에 대한 마음의 여유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미 비슷한 돌발 상황을 경험해 본 사람은 처음 겪는 사람보다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상대의 불안감도 감싸줄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 자기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 익숙한 사람은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빨리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이때 여행은 더 즐겁게 다녀올 수 있다.

신앙의 여정도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지내다보면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이때에 두 가지 자세는 필요하다. 눈 앞에 발생한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사람의 의견과 감정을 구분하는 자세이다. 한 사람의 말만 듣거나 미리 판단하기보다 실제 일의 순서를 확인하고 사실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신앙의 목적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이며 하느님을 향한 신앙생활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이에 부가적인 요소들은 하나씩 제외시켜나가는 일이다. 많은 문제들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친목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생긴다는 점은 본질에서 벗어날수록 갈등과 싸움이 많아진다는 걸 기억하게 한다.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이기에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용서와 자비이다. 내가 이미 용서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제대로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용서를 받아본 사람은 타인을 용서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감할 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용서받을수록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과 용서의 마음은 더욱 커진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느끼는 만큼, 상대를 사랑하는 하느님을 알기에 하느님을 통해 그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기억하자.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사랑할 수 있고
용서를 받아본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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