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2019. 11. 13. 08:29예비자 교리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마르 1,1

 

 

복음이란 무엇일까?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그분의 행적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된다. 지금까지 율법을 통해, 예언자를 통해 전해졌다면 이번에는 하느님이 직접 오셔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기쁜 소식이 된다. 하느님이 자신의 영광을 뒤로하고 스스로 피조물인 인간이 되어서 우리에게 오셨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 인간을 위한 사랑을 보여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자신의 애완동물을 사랑할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인간의 지위를 버리고 동물이 되어 함께 하고 싶은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런데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온전히 당신과 함께 하며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기를 원하신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셨기에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 하느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넘어서기 힘든 벽이 있었다. 하느님의 가르침과 인간의 나약함이 만났을 때, 쉽게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오기 때문이다. 그건 하느님이니깐 가능했지! 나는 사람이야. 그건 못해. 좋은 말이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온다. 하지만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기에 큰 희망이 생겼다. 나와 같은 나약함을 함께 하고 있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신앙인의 기준이 생긴 것이다. 하느님의 약속이 그저 전설이나 좋은 말로만 남지 않고 나의 삶으로 연결된 순간이다.

 

 

 

 

만약 예수님이 하느님이시기만 했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이시기에 가능한 가르침이었다. 내가 그것을 살아갈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또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모두 부정된다. 신에게 고통이 있을까? 그분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은 고통받는 척, 죽은 척한 사건이 된다. 부활 역시 신이니까 가능한 일, 혹은 부활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성탄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부활이 그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진 사건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느님이시기만 하고 인간의 모습을 하기만 했다면 이 두 사건 모두 의미가 부정된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이시기만 했다면?

예수님이 사람이었다가 어느 순간 하느님이 되었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누구나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느님이 아닌 게 된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아니라 창조된 신적 존재 혹은 업그레이드된 신적 존재가 되어 버린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믿음이 깨지거나 등급이 낮은 신, 영적 존재로 격하되어 버린다. 자연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의미가 흐려진다. 그만큼 공적 계시의 의미가 낮아지고 우리가 가진 구원의 희망 역시 불분명해진다.

 

 

"한 분이시고 같은 분께서 그리스도, 외아들, 주님이시며, 두 본성 안에서 혼합되지 않으시고 변화되지 않으시며 분리되지 않으시고 나뉘지 않으시는 분으로 인식되며, 이 외에도 결합으로 인해 본성들의 구별이 없어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두 본성의 각 속성이 보존되며, 하나의 위격과 하나의 히포스타시스로 결합되신다." - 칼케돈 공의회 신경

 

 

예수 그리스도는 신비이다.

온전한 하느님이시기에 그분의 사랑을 우리를 깨닫고, 온전한 인간이시기에 우리는 구원의 희망을 얻는다. 어떤 방식으로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고 있는지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마치 삼위일체 교의처럼, 내적 신비를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게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의 근본이 된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거룩함의 모범이 되며,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