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6. 14:50ㆍ천주교 신앙 생활 가이드
매 주일마다 미사를 지내는 의미는 무엇일까?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위해 수난받으시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주일 미사를 통해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바라보며 한 주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부활의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2000년 전의 한 사건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부활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변화가 시작된다.
하나는 부활을 통해 우리 믿음이 시작될 수 있었다. 예수님이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하시고 아픈 이를 치유하며 마귀 들린 이에게 해방을 주셨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면 그분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위인일 뿐이다. 그분이 하느님이신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거나 예언자, 선지자로 말할 뿐이다. 하지만 그분은 죽음을 넘어 우리에게 다시 오셨다.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당신의 발아래 두셨고 다시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부활 사건은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우리 정체성의 변화이다.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7) 그분은 당신의 제자들을 형제라 불렀고,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이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받아주셨다. 결국 우리 역시 죽음을 이기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에 동참할 수 있다는 강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성탄.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
부활. 우리의 믿음의 시작
우리 신앙인에게 일 년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은 언제일까?
태어나지 않으면 부활이 없었으니 성탄 사건이 중요할까? 아니면 부활하지 않으셨으면 하느님이심을 알 수 없으니 부활 사건이 중요할까? 현실적으로 성탄절은 공휴일이기에 온 가족이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다. 부활절은 매년 바뀌기 때문에 때로는 시험기간에 겹치기도 하고 회사나 학교 일로 가족이 함께 하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부활 사건은 믿음의 시작이 되는 순간이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나아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희망을 전해준다.
잠시 지상에 머물며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 그분의 자리로 돌아가셨다.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온 성탄과는 달리 다음에 오실 때에는 하느님의 영광을 가지며 우리에게 오시어 심판하시게 된다. 심판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며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봐주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가며 가르침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심판의 날은 하느님 나라에 온전히 참여하는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된다.
부활의 증거
빈무덤 - 부활의 첫걸음이지만 증거는 아님
제자들의 삶 - 부활의 증거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의문은 항상 따라왔다.
인간의 생각과 눈으로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간 빈 무덤은 그 자체로 부활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 무덤을 바라보던 제자들의 반응은 부활에 대한 첫걸음이 된다. 제자들의 당황스러운 반응과 토마스처럼 믿지 못하는 모습은 제자들 역시 부활 사건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히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변화된 삶이 부활의 증거가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어지내던 제자들은 부활 사건을 기점으로 변화하게 된다. 성령강림 후 제자들은 온 세상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때로는 그들을 반대하고 때로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제자들은 모두 하느님을 바라보았다. 얼마든지 숨어 지낼 수 있고 변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연락이 어려운 먼 지역으로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변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다. 대부분의 사도들이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함께 체험한 부활 사건이 진실된 사건임을 보여준다.
부활은 소생과 다르다.
죽은 라자로는 예수님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그는 다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라자로에게는 소생했다는 표현을 한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후 하늘로 올라가셨다. 죽음은 다시 찾아오지 않기에 우리는 부활하셨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가지는 희망은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으로의 동참, 곧 부활의 삶이다.
예수님 이전에 죽은 이들의 구원은 어떻게 될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지옥으로 내려가셨다. 그곳에서 죽음에 묶여 있던 영혼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주셨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데리고 올라가는 성화는 바로 이 가르침을 전해준다. 이미 예수님 이전에 죽은 이들과 예수님을 몰랐지만 의롭게 살아간 이들의 영혼은 하늘에서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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