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6. 23:00ㆍ천주교 신앙 생활 가이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제자들은 멍하니 서 있었다.
이때 천사는 말한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승천하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신다. 우리를 도와줄 협조자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오순절이 되어 성령이 제자들에 오자, 그들은 온갖 언어로 말을 하며 각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된다.
성령은 분열되었던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며, 참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진리의 영이다. 또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시지만,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에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곧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들을 도와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신다.
성령 하느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교회는 이렇게 가르친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정신을 열어주신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하느님과 화해시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며. 그들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그리스도의 신비를 그들 안에, 특히 성체 안에 탁월하게 현존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두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해 주시며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하느님을 따르는 백성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친교를 이루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
진리의 성령
일치의 성령
예수님은 2000년 전 이스라엘에 오셨다. 참된 인간이셨던 그분은 유다인의 문화에 맞춰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계시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언어의 한계와 문화적 차이는 다른 지역 다른 시대의 사람에게 그 뜻이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를 진리의 성령께서 도와주신다. 교회와 함께 하시며 교도권을 통해 각 시대와 문화에 따른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적용하며 방향성을 잡아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는 성격이 급하고 누구는 느긋하며, 또 누구는 로마인을 증오하고 누구는 로마인을 위해 일을 했다. 그런데도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도 제자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바로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령은 서로 다른 이들이 믿음을 중심으로 일치하도록 이끌어 준다.
성령을 중심으로 함께 하는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라고 부른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지만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노래를 잘하고 누구는 운동을 잘하며 누구는 글을 잘 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은사를 받은 이들이 각자의 장점을 활용하여 서로를 위해 봉사하는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우리 각자는 몸의 지체가 되어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간다. 열 손가락 중에 깨물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 우리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이들은 모두 소중하다. 공동체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실 때, 서로의 다름은 서로를 위한 봉사로 이어진다.
역사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
하느님 안에서의 사랑의 관계
성령 하느님은 오순절 이후에 우리에게 오신 걸까?
아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분이지만 세 위격을 가지신 분이다. 구약 성경에서도 예언자에게 영이 내려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성령 하느님은 함께 하셨다. 그런데 성령 하느님이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만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이 하느님을 체험한 이들이 기록했다는 특징 때문이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하지만 그분을 체험한 이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하느님을 기록했을 뿐이다. 자연히 구약 성경 안에서는 성부 하느님만을 표현하게 되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이들은 성자 하느님을 중심으로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볼 수 없자 함께 하시는 성령 하느님을 중심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렇게 역사 안에서 인간의 입장에서 체험한 하느님을 바라볼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이를 구원 경륜적 삼위일체라고 한다.
삼위일체에서 일체를 중심으로 볼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가지는 사랑의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 관계를 내재적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하느님의 신비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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