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죽음 이후에 대한 우리의 믿음

2019. 11. 19. 11:15천주교 신앙 생활 가이드

 

 

살아있는 존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병과 노화를 통한 육신의 고통부터 시작하여 함께 했던 이들과 관계가 단절되는 기분, 세상 안에서 자신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느낌까지... 죽음을 맞이하는 이와 떠나보내는 남겨진 이들에게도 죽음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는 의학을 발전시켰고, 누구는 불로초를 찾아다녔으며, 또 누구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죽음은 공포스럽고 두렵기만 순간일까? 지상에서의 순례길을 마무리짓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해야 할까?

 

교회에서 죽음은 죄 때문에 세상에 들어왔다고 가르친다.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던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죄 때문에 낙원을 떠나게 된다. 한 사람을 통해 들어온 죽음이 모든 이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겪고 다시 부활하시며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를 변화시켜주었다. 지상 생활의 끝인 죽음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기쁨의 순간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례 미사때에 검은 색이 아닌 기쁨을 상징하는 흰 제의를 입는다. 이미 세례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았다면 하느님을 마주 보며 함께 하는 영원한 행복으로 들어가게 된다.

 

 

죽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심판, 천국, 연옥, 지옥

 

 

사람은 죽음으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친다.

육체가 있었기에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환경에서 존재했던 인간이 영혼만 남아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이제 지상에서의 삶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다. 한 사람이 죽는 순간에 진행되는 이 심판은 사심판 혹은 개별 심판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죽은 이후에는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기에 종말의 날에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된다. 이를 공심판이라고 부른다. 심판을 하시는 분은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시지만, 그분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오셔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 이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이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심판을 통해 우리는 천국과 연옥, 지옥으로 나눠지게 된다.

천국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가직하고 완전히 정화된 이들이 머무는 상태이다.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는 상태이다. 온전한 생명과 사랑의 친교가 이루어질때, 바로 천국이 되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고 개개인의 영혼이 사라지고 하느님에게 흡수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원을 가지며 하느님 안에서 함께 한다.

 

완전한 정화를 이루지 못한 이들은 연옥에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을 선택했지만 유혹에 빠지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완전한 친교를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단죄의 개념인 벌이 아닌 정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육신을 잃고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난 이들은 스스로 기도할 수 없다. 지상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죽은 이들을 정화를 위해 기도한다. 교회에서는 죽은 이들을 위한 자선과 대사, 보속도 권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이 자유는 내가 그분을 선택할지 말지에 대한 자유까지 포함된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린 이가 처한 상태를 우리는 지옥이라고 부른다. 육신을 잃고 불안정된 상태에 머무는 이들이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지옥의 고통에 처하게 된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며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하느님으로부터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옥에 관한 가르침은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이다. 

 

 

천국 연옥 지옥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이해하기 쉽게 장소로 표현하곤 한다.

 

 

면죄부? 대사부?

종교 개혁때 교회에서 면죄부를 팔았다고 알려져 있다. 돈을 넣는 만큼 죄를 용서받는 증서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면죄부라는 말은 없다. 대사에 대한 가르침에 잘못 전해졌다. 대사는 고해성사를 통해 죄가 용서받았지만 남아있는 잠 벌을 사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를 교회의 친교를 통해 나눠줄 수 있다는 데에 근거를 둔다. 전대사의 경우는 죄인이 받아야 할 모든 벌을 없애주는 것이고, 한대사는 일부분을 없애주는 것이다. 대사는 교회에서 정한 일정한 조건을 채울 때 받을 수 있다.(주로 미사와 영성체, 고해 성사와 교황님의 기도 지향으로 기도하는 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