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5. 04:00ㆍ2022년 다해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이웃과 형제는 차이는
단 하나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냐? 아니면 같이 살아가는 이냐?입니다.
한 지역에서 같이 머물며 사는 이는 이웃입니다.
그들과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남을 배려하고
나의 자유만큼 남의 자유도 중요한다는 인식을 가집니다.
그러니 각자의 삶은 큰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한 지역에서 살아가며 오며 가며 인사할 뿐입니다.
삶을 공유하면 함께 사는 형제입니다.
단순히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관계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고 관심을 가지며
서로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입니다.
이렇게 형제자매는
서로의 삶을 이끌어주고 지지해주면서
함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혼자서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나를 넘어서 커다란 위기가 찾아온다면
자연재해와 같은 고통과
세상 변화로 인한 아픔이 찾아온다면
개인은 그저 무력해질 뿐입니다.
각자도생을 말하면서 각자 죽어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곧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나아간다면
일상에서 작은 불편함이 생길 수는 있지만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함께 하는 따스함은
희망의 향기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피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우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형제는
좋을 때와 결실을 맺을 때뿐만 아니라
어려움과 슬픔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권한만 누리고 책임을 피한다면
이웃보다 더 나쁜 위선자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운명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만큼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나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입니다.
사람이 적으면 한 명 한명이 소중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지면 점점 숨어들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발을 빼면서 누군가에게 짐을 늘리게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공동체 안에 신뢰가 깨지게 되는 과정입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사람이 한명 한명 늘어날수록
공동체는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만 만연하게 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남이가 하는 생각입니다.
서로 함께 나아가는 삶이지만
타인에게 강요하는 삶은 안됩니다.
그러면 나이나 지위를 통해 갑질만 하게 될 뿐입니다.
웃으면서 상대를 숨 막히게 만드는 자세,
정을 강요하는 자세는 공동체의 미래를 죽이게 될 뿐입니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먼저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잊을 때,
공동체는 폭풍 앞의 고요와 같은 상태가 될 뿐입니다.
오늘 부자와 라자로에게서 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부자는 여유롭게 지내지만
문 앞의 라자로를 보지 못했습니다.
함께 즐기는 이들을 형제로 바라보았지만
한 공간에 있던 이를 이웃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하느님이 원하신 뜻을 외면하고
하느님께 받은 선물만을 즐기려 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인간다움을 잊어버리고
그저 삶을 즐기고자 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기억해야 합니다.
대단한 가르침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자세를 기억하고
같은 공간에 살면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이미 주어진 말씀에 충실하고
내가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주는
그리하여 함께 웃으며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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