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1. 04:00ㆍ2023년 가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대림의 세 번째 초는
기쁨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이 곧 오신다는 희망이
우리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기쁨으로 변하는 때입니다.
주님 안에서 얻는 기쁨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바랐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가 진정 기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기쁨은 깊어질 것이고
희망이 현실로 되어 갈 때
그 기쁨은 우리 삶을 가득 채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기쁨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1 독서에서는 이렇게 외칩니다.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의 하느님을!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심판의 하느님을 바라보는 이들은
하느님의 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을 깨달은 이들만이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고
주님이 주신 초대장을 받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 하며
우리 안에 자리잡았던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기쁨을 위해
우리는 성실한 자세로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인내로이 참고 기다리며
우리를 찾아올 주님의 손길을 맞이해야 합니다.
곡식이 익기도 전에 뽑으면 죽어버리듯
너무 많은 염려와 걱정은 구원의 결실이 맺을 수 없게 하고
잘못된 판단과 실천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오직 희망을 간직한 이들만이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를 세례자 요한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셨음에 기뻐하면서도
쉽게 선택하지 않고 식별하려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듯
마귀들 역시 찾아와 우리를 유혹에 빠뜨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예수님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아무리 머리로 찾아도 하느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끼리 관계를 맺어도 그 안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믿고 따르며
그분을 체험한 이들만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진정 기뻐할 수 있던 이유는
인내와 끈기로 주님을 기다렸고
주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식별하였기 때문입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이만이
요한처럼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성실히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의 오심을 기뻐할 수 있는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곧 오실 주님을 통해
우리의 기쁨이 온 세상에 드러나길 준비하는
그런 한 주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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